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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배터 이야기 – 시작

하류인생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 발표”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떠난 건 그로부터 겨우 6일 뒤 였다.

편모가정, 차상위계층, 88만원세대..

내겐 늘 주홍글씨와도 같은 낙인이 찍혀 있었다. 비참한 가난과 함께..

“그래.. 평생 이렇게 살다 뒈질 바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26살. 난 그렇게 하류인생을 담보로 스포츠배팅 시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준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6년간 도박판에서 뒹군 한 남자의 인생역전 스토리이다.

도박중독자의 통장잔고

어렵게 모은 1600만원을 딱 11일만에 사설에서 몽땅 빨렸다.

“씨발 진짜 좆같네..”

난 극에 달한 짜증과 분노로 신용한도 끝까지 닥치는대로 대출을 받았다.

그 결과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만 무려 2800만원. (+카드론500) 

결국 대출이자는 밀리고, 하루 2~30통씩 독촉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웃긴 건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벌겋게 충혈된 내 눈은 이란D1..터키D2..와 같은 변방 잡리그를 쫓고 있었다.

이후 난 군포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일을 시작하게 된다.

솔직히 빚 청산 명목으로 매달 상환금액 110만원과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포기 대신, 난 죽기살기로 최후의 도박자금을 긁어 모으며 발악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누가 이기나 갈 데까지 함 가보자!”

전업배터의 통장잔고

하루종일 택배박스에 파묻혀 천근만근이 된 몸으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가설-표본취합-검증”

여태껏 빨린 판돈 5000여만원의 복수를 위해선 빈틈없는 계획이 중요했다.

허나 짧게는 몇주에서 길게는 몇개월 내내 매달린 작업물들의 결과는.. 번번이 내게 뼈아픈 좌절감만 안겨주곤 했다.

‘대체 뭐가 문제지…?’

어느덧 폐기된 스프레드 시트가 40개를 넘기고 나 또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우연히 얻어 걸린 패 하나가 녹록치 않던 내 상황을 급반전 시켰다.

이 시점부터 한층 정교해진 히든 배당률 설계 작업이 이뤄졌다.

물론 핫식스 1캔에 의지해 새벽 3~4시까지 무리한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몸은 탈이 났지만, 그렇다 해서 멈출 생각 따윈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것은 아마 이 통계적 추론에 기반을 둔 시스템만 완성된다면, 월 1000만원 이상 벌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 내 통장잔고는 100배로 불어나 있었다.

전업라이프

나의 오래된 “0순위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해외축구 직관”

누군가는 헬조선에서 고작 150만원 벌려고 뼈빠지게 일하고 있을 때, 난 그렇게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좁은 통로엔 영국인 특유의 악센트를 내뱉는 열광적인 북런던 축구팬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

노후된 건물내벽과 군데군데 벗겨진 회색 페인트 칠.

10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화이트 하트 레인 스타디움”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없던 흙수저 시절에 나였다면 평생 오지 못했을 장소.

바로 그 토트넘 홈구장 셋째 줄에 내가 딱 앉아 있었다!!

늘 TV중계로만 접했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코 앞에서 지켜보다니.. 마치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스포츠배팅 한답시고 좁은 방구석에 틀어 박혀, 돈이란 돈은 있는대로 꼴아 박던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드디어 해냈구나’

난 개미처럼 묵묵히 일하며 “한평생을 맨 땅에 헤딩!” 하는 순진한 바보들 틈에 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학등록금 빚, 첫차구입 빚, 결혼준비 빚, 집장만 빚, 자식양육 빚.

아마 대출빚 갚는데만 족히 20~30년은 걸릴텐데.. 이딴식으로 내 인생을 썩히며 살긴 싫었기 때문이다.

그 고집으로 전업배터가 되었다.

재작년. 본격적으로 히든 배당률 시스템을 도입한 후 계좌엔 돈이 빠르게 쌓였고, 이전 4년간의 도박빚 수천만원도 겨우 5개월만에 모두 청산했다.

이 계기를 통해 어엿한 전업사무실을 차려 독립했고, 매달 의사+변호사 부럽지 않은 밥벌이도 하게 됐다.

결국 난 배팅만으로 억대연봉의 꿈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