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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바 체험기 – 1

작업의 정석

몇 해 전, 내 속을 밝힐 수 있는 친구에게 단 한 명에게만 말을 꺼냈었다.

” 아무래도 나 노름을 직업으로 삼아야 할까 봐. “

” 무슨 공식 같은 확실한 방법을 찾아낸 거야? “

” 아니. 그런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

” 그럼 어떻게 하려고? “

” 치고 빠지기 해야지. “

” 정말 자신 있는 거야? “

” 응, 자신은 있어. 그런데 많이 힘들 것 같아. “

” 그래. 너라면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

이 말을 꺼내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잊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생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했을 뿐이었다.

노름은 종류가 많지만 난 카지노 겜블링을 선택했다.

포커 실력이라곤 남을 속이는 재주가 없어 학교 선후배 간의 삥발이 수준일 뿐 타짜와 선수가 등장하는 House 포커판은 모른다.

게다가 ‘내기’는 극도로 혐오하는 터라 사다리 게임도 절대로 하지 않을뿐더러 명절에 오가는 고스톱 패는 증오의 대상이다.

구슬치기, 지우개 따먹기, 딱지치기, 판치기, 짤짤이, 쌈치기 이런 것들은 해본 적이 단연코 없다.

경쟁이라는 공포심을 처음 느낀 곳은 군대에서 소대 대항전 축구였다.

나 혼자 고통받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단체가 받는 고통은 괴롭기 짝이 없었다.

이런 내가 카지노 노름꾼이라니? 그것도 직업으로?

사실 카지노 경험은 꽤 이를 적에 해보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첫 경험은 정말 우연이었다.

아는 사람을 따라갔을 뿐인데 인생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란 잘 알다시피 돈을 말한다.

그리고 잘 짜진 계획이 필요하다.

규칙적인 생활과 절제된 플레이 타임은 기본이며 자신에게 맞는 배팅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땄을 때와 잃었을 때의 대처법을 충분히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지켜야 할 수칙과 행동강령을 나열하자면 한 페이지는 훌쩍 넘어버리지만, 인간인 이상 완벽을 기대하긴 힘들다.

그러기에 늘 강한 정신무장과 최상의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

내 수준에서의 ‘시작’은 적어도 5만 정도가 필요했다.

그런데 5만은커녕 5페소짜리 동전도 주머니에 없는 날이 많았다.

수도도 끊겨보고 전기도 끊겨보고 점점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종잣돈 5만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설사 5만이 있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창업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도박중독자 혹은 정신파탄자로 지탄받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몇 해가 지났다.

눈앞에 산적해 있는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주머니엔 딱 2만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조차 노름으로 쉽게 날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노름밑천으로 쓸 것인가, 최후의 비상금으로 놔둘 것인가 장고의 장고에 들어갔다.

작업을 시작하기엔 아직 부족한 금액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양단간에 결정해야만 하는 때가 왔다.

이발비와 치과진료비, 그리고 교통비를 제하니 그새 2천이 더 빠졌다.

나에겐 아직 1만8천이 남았다.

몇 년 만에 찾아오는 곳인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깊은숨 몇 번으로 감정을 가다듬고 분위기부터 살폈다.

그렇게 30여 분의 탐색전이 끝나고 드디어 가장 긴장되는 첫 배팅을 시작했다.

입장 시각은 대략 오후 3시였고 1시간의 휴식을 포함하여 8시에 종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수 플레이 시간은 4시간 가량이다.

첫날이라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배팅도 아주 조심히 소액으로만 일관했고 만에 하나라도 총알이 빠지면 전체 1만에서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마저 빠트려 버린다면 도무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목표는 액수에 상관없이 무조건 ‘플러스’일 뿐이다.

오래간만이라서 그런지 감각은 꽤 무뎠다.

습관적인 기계적 배팅으로 일관했다.

다행스럽게 아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최종 결과는 2만 3천으로 마무리했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2화에 계속